영덕대게
특산물 구분 수산물
효 능 비타민 C가 많아 피부미용에 좋고, 면연력을 강화 해줌
제철 계절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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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 영덕대게

  • ♣  영덕대게의 유래

    • 영덕에서 전해지고 있는 대게 유래에 대하여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 하나는 예주 (지금의 영해지역)의 연역에서 나타나듯이 고려태조(왕건) 23년(서기 940년)에 지금의 영해지역을 처음 순시때 임금님의 주안상에 특별한 음식으로 올린 것과 그 이후 예주부사가 대게잡이로 알려져 온 이곳 마을을 초두 순시한 것을 바탕으로 마을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기인한다.

      다른 하나는 조선조 초기에 지방특산품을 중웅에 조공하여 임금님의 수랏상에 대게를 올려 맛보게 하였으나 당시 대게를 먹는 임금의 자태가 근엄하지 못하고 임금의 얼굴에 대게살이 묻어 있는 모습을 신하들이 보기에 너무도 흉칙하여 한동안 수랏상에 대게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게의 특별한 맛이 생각난 임금이 신하에게 다시 대게를 찾아오라고 명하여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가 게를 찾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와 한참을 헤매던 끝에 지금의 동해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서 한 어부가 잡은 게를 찾게 되었다.


      그때 어부에게 그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어부가 대답하지 못하여 크고 이상한 벌레라는 뜻으로 언기라고 이름지었다. 죽침 언기어 또는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같고 다리의 마디가 여섯 마디라는 뜻으로 죽육촌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죽해(竹蟹)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그 뜻은 대나무 섬을 지나오면서 잡아온 게의 다리가 대나무 마디와 같이 길쭉하다는 의미이다.


      하여튼 구설로 전하여지고 있지만 게가 크다는 뜻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으며 길쭉하고 곧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앞으로 영덕대게는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품질관리는 물론 자원보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그 위상을 높여가며 지역명품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  문헌과 속언


    • 중종 25년인 1530년에 발간된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 람"의 토산물조에 보면 조선팔도에 게가 생산되는 고을이 71개소이지만 자해(紫蟹)가 나는 지역이 경상, 강원, 함경도의 11개 지역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앞에 명시된 71개 고을에서 나는 게는 민물에 나는 참게 종류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11개 지역에서 잡히고 있는 자해(紫蟹)는 홍게와 지금의 대게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11개 지역가운데 영덕과 영해의 지명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동해안 곳곳에서 대게가 잡히고 있으나 대게는 영덕의 지역특산물로서의 문헌상 근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광해군 5년인 1614년 발간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게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얕은 바닷가, 시냇물, 호수, 못 등에 살고 있는 게는 발이 8개이고 집게발이 2개이며 발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옆으로 기어가기 때문에 방해(方蟹)라고 불렸으며, 게는 늦여름과 초가을에 생태적으로 매미처럼 허물을 벗는다고 하여 벗을 "해(蟹)"자를 붙였다고 한다.


      광해군 6년 1614년에 나온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살펴보면 게의 껍질은 사람의 손으로 벗길 수 있어 쪼갤 "해(蟹)"자로 표현했다고 한다. 게를 오래 보관하는 법, 게젓을 담그는 법과 게찜이나 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등 이같은 음식으로써의 게에 대한 기록은 1809년에 빙허각 이씨란 분이 쓴 "규합총서"라는 책에 나타나있다.


      그 이후 조선말기에 문신이며 서예가인 최영년(1856~1935)의 "해동죽지"라는 시집중편의 음식물 편에 해각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해각포 중에는 동해안 영해에서 나는 것이 최고 명품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영덕이 대게 원조의 고장이라는 확실한 문헌적 근거를 가졌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